아쉬움가득한 석민어린이의 퇴장 기아타이거즈 에이스 윤석민 은퇴를 바라보며

2019. 12. 18. 09:00야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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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3일 이범호선수의 은퇴식의 고별사중 가장 가슴이 찡한 한마디가 나왔다. 

팔이아픈 윤석민선수의 부활을 염원하는 한마디였는데 이범호선수도 그리고 기아타이거즈 팬들또한 윤석민 선수의 부활을 고대하였을 것이다. 

 

엊그제 갑작스럽게 은퇴소식을 알렸던 기아타이거즈 윤석민 선수. 한때 류,김,윤 삼대장으로 KBO 최고 우완투수라는 수식어와 함께 타이거즈의 에이스 계보를 이었던 해태타이거즈에서 기아타이거즈로 사명 변경이후 기아타이거즈 사상 첫 에이스라고

불리었기 때문에 그의 은퇴소식이 너무 아쉽게만 느껴졌다. 

 

기아타이거즈 윤석민선수는 1986년 7월 24일생으로 경기도 구리시에서 태어나 구리초-인창중-야탑고를 졸업후 

2005년 2차 1지명으로 기아타이거즈 지명을 받았던 선수로 2005년부터 불펜투수로 시작해 2006년에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2007년부터 선발투수로 전향했으나 7승 18패로 그해 최다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2007년도 방어율이 3.78로 당시 기아타이거즈의 전체적인 전력이 부실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팬들은 

앳땐얼굴이라고 해서 석민어린이와 타이거즈의 소년가장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KBO통산 12시즌동안 77승75패 86세이브 18홀드 평균자책점 3.29의 방어율을 기록했으며 타이거즈 마당쇠라고 불리울정도로 팀이 어려울때 선발 - 중간 - 마무리를 넘나들며 궂은일을 도맡아싶이 했던 선수라 아쉬움이 남는 통산기록이다. 

2011년도 17승 5패 1세이브 178삼진 방어율 2.45로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 4개 부문에서 1위에 오르는 투수 4관왕을 기록했는데 선동렬감독 이후 첫 기록이었기에 이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했는지 알수있다. 

 

2014년 메이저리그 도전실패이후 기아타이거즈와 90억에 사인후 돌아와서 30세이브를 올리며 마무리로 활약했지만 

알고있던 윤석민의 구위가 아니었다.

이듬해부터 출전 경기수가 줄어들더니 17년도에는 통으로 한시즌을 쉬게되었으며 부상으로 제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올해 은퇴라는 소식으로 근황을 알려오게 되었다. 

 

본인이 올해 초부터 은퇴를 생각했었다는 생각을 밝혔을정도로 90억 먹튀 , 사이버투수라는 오명을 들으며 예전같지않았던

구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FA선언이후 메이저리그 도전때부터 아무래도 어깨에 이상징후가 있지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당시 국내 유턴시 기아타이거즈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도 이와 동등한 조건으로 타팀과도 계약이 되지않았을까 생각이든다. 

 

나는 기아타이거즈 팬으로써 그가 먹튀를 했다고 비난하는 것보다는 더 이상 마운드에서 볼수없다는 아쉬움과 그가 너무 쉽게 포기를 해버리지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후배들의 기회를 뺏을수있다는 말은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가 않고 그저 도망간다고 생각이 드는것은 왜 일까?

아마도 타이거즈 팬들은 부활을 염원했을 것이고 양현종선수와 같이 선발 로테이션을 도는것을 조금이라도 보는 것을 바라지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이거즈가 이대진을 사랑했듯이 말이다. 왜 이대진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길은 너무 고된 길이기 때문에 도망간것인지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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